(회사에서는 현지 발음을 근거로 이쿼녹스라고 표기하는 모양이다. 내가 빠다 발음 별로 안 좋아하는데다 어차피 라틴어 어원일테니 그냥 로마자 읽히는 대로 에퀴녹스라고 쓰겠다.)
GM대우에서 2006년에 출시했던 중형 SUV 윈스톰은 GM의 테타 플랫폼을 기반으로 GM대우에서 개발한 모델로, 쌍용과의 결별 후 처음으로 개발한 SUV였다. 이후 사명이 쉐보레로 바뀌면서 함께 모델명이 캡티바로 바뀌었고, 아는 사람만 알 정도의 소소한 변경들을 거치면서 무려 12년 동안 출시되어 왔다. 아, 현행 모델은 유로 6 규정에 대응하는 오펠 엔진과 아이신 6단 미션이 올라가서 파워트레인 상으로는 처음 출시됐을 때(엔진은 MOTORI, 미션은 아이신 5단. 이후 GEN 시리즈 미션으로 바뀜)와 완전히 달라지긴 했다.
한때 유럽이나 호주 등에서도 판매되었던 캡티바는 이제 단종되고, 후속 모델로 에퀴녹스가 들어오게 되었다. 헌데 이 모델의 포지션이나 가격 정책에서는 쉐보레에서 늘상 해오던 삽질의 향기가 강하게 풍긴다. 한 급 아래의 모델을 들여와서 동급(이라고 스스로 주장하는) 모델과 같거나 비싸게 팔다가 망하기라는, 반복된 실패의 전철을 밟기.
1. 플랫폼
기존 캡티바나 에퀴녹스 이전 세대가 쓰던 테타 플랫폼에서 크루즈 등에도 쓰였던 델타(D2XX) 플랫폼 기반 ... 뭐 플랫폼이야 좀 이리저리 늘리고 해서 공간만 넓직하게 뽑으면 되지 ...
2. 차체 크기
에퀴녹스는 "길이가 4,650mm, 높이는 1,690mm, 너비는 1,845mm, 휠베이스 2,725mm로, 차체 길이에 비해 휠베이스가 긴 편이다. 경쟁 모델로 거론되는 르노삼성 QM6보다 길이가 2.5cm 짧지만, 휠베이스는 2cm 길어 여유로운 실내 공간을 제공한다"라고 하는데,
존재감도 없는 QM6만 경쟁 모델이랍시고 비교할 것이 아니라, 베스트셀링 중형 SUV인 쏘렌토를 보자. 길이 4,800mm, 높이 1,690mm, 너비 1,890mm, 휠베이스 2,780mm이다.
조금 더 작은 체급의 스포티지는 길이 4,480mm, 높이 1,645mm, 너비는 1,855mm, 휠베이스 2,670mm이다.
쏘렌토가 (베라크루즈 단종 이후) 대형급까지 어느 정도 커버하기 위해 상당히 크게 나오고, 스포티지는 세대를 거듭하면서 슬금슬금 커지면서, 에퀴녹스는 스포티지보다 살짝 큰 정도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일부 수치는 오히려 스포티지보다 작다.
에휴, 그래 뭐 이 정도 수치상의 '미미한' 차이 정도야 "현기차가 쓸데없이(?) 공간 뻥튀기를 잘해서"라고 정신승리하고 넘어갈 수 있다 치자.
3. 엔진 배기량
136마력의 최대출력과 32.6kg.m의 최대토크를 제공하는 1.6리터 에코텍 디젤 엔진이 올라간다. 으응? 뭐라고? 1.6리터 엔진이라고?
아이고, 천조국 형님들 째째하게 왜들 이러세요. 니들 대배기량 엔진 좋아하쟎아. 6리터짜리 헤미 엔진 이런 거 팍팍 올리고 그러쟎아. 아, 환경도 생각해야 해서 다운사이징이 대세라고. 그래 좋아. 그런데 조선에서는 말이야, 하다못해 소형급이라는 스토닉도 1.6리터 디젤 엔진이 올라가. 110마력에 토크는 30.6kg.m.
스토닉은 너무 심한가? 그럼 스포티지를 보자. 디젤 엔진만 1.7리터랑 2.0리터 두 종류가 올라간다. 대부분은 141마력에 34.7kg.m의 토크를 내는 1.7리터 엔진을 선택하겠지만, 현기차가 자랑하는 2.0리터 R엔진을 선택하면 186마력에 41.0kg.m의 토크를 즐길 수 있다. (참고로, 자체적으로 비교 대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소렌토로 가면 2.2리터 R엔진이 등장하는데, 이 녀석은 202마력까지 나온다.)
"자, 스포티지 대신 에퀴녹스를 사야할 이유를 말해주세요."
2006년에 나온 띠동갑 선배 윈스톰마저 150마력에 32.7kg.m 토크 정도는 나와줬다구. 일부러 안 팔리게 하려고 작정이라도 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12년 뒤에 출시되는 모델에 더 사양이 낮은 엔진을 달아버릴 수가 있니.
(그래, 그 동안 많은 사연이 있었겠지. 유로 6 규격에 대응하는 2.0리터 디젤 엔진을 만들어주던 독일 자회사 오펠을 PSA에 팔아버렸더구나. 이제 미국이랑 중국 말고는 전세계적으로 철수 분위기니까, 천하의 GM에서 제대로 된 2.0리터 디젤 엔진을 도저히 못 만들어낼 형편이 되어버린 건가?)
그래서 가격이 얼마냐고요?
스포티지 대신 굳이 사야할 이유를 도저히 알 수 없는, 하지만 스스로는 쏘렌토나 싼타페의 경쟁 모델으로 포지셔닝한 우리 에퀴녹스의 국내 출시 가격은 ▲LS 2,987만원 ▲LT 3,451만원 ▲프리미어 3,892만원으로 책정될 예정인가 보다. 여기에 "경사로 저속 주행장치가 결합된 전자식 AWD 시스템을 적용하려면 200만원이 추가된다"고. 최고 트림에 AWD까지 넣으면 4,092만원이 되는 셈이다.
음 ... 스포티지 1.7리터 모델이 2,320~2,530만원선이던데 ...
이렇게 되면 에퀴녹스 트림별로 이모저모 따져보는 게 별로 의미가 없을 정도인 듯 하니, 이쯤에서 끝내자.
P.S. 어차피 내 말 듣지도 않겠지만, 최소한 LS 트림이라도 별 쓰잘데기 없는 후방주차 보조 시스템이니 전방거리 감지 시스템이니 차선이탈 경고 시스템이니 하는 것들 좀 빼서라도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추는 것이 어떨까. 직물 시트 넣어주면서 저딴 거 해줘봐야 무슨 소용? 하 ... 시절이 어느 시절인데 직물 시트라니! 내가 그냥 분명히 말해줄게. LS 트림 2500만원대에 내놓지 않는 이상, 니들 한국 시장에서 에퀴녹스 팔아먹기 힘들거야. 스테이츠맨 베리타스 임팔라의 실적을 다시 보게 될거야.
그리고 1열 통풍시트랑 2열 열선시트 정도는 LT 트림부터 좀 넣어줘라. 이런 건 이제 기본이다 기본.
쉐보레는 시장 조사 이런 거 안하냐?